피해자가 살아있는 동안에 정의를!

시민연대속보

www.truelaw.net

2007 1 16()

31(매주 화요일발행)

 ¦ 펴낸이: 이금주, 곽동협, 김광열  ¦ 펴낸곳: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 ¦ 만든이: 김보나, 박정희   

¦ 펴냄터: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 114-22 서암빌딩 306 (F)02-2232-5234 (H.P)010-2409-0039 (E-mail)truelaw2003@hanmail.net

 


- 1 둘째주 소식 -   

 

1 둘째 국회활동 보고

- 피해자 최종합의안에 의거, 의원면담 추진.

- 매일 저녁 8 비상온라인회의 활동경과보고, 차일 활동목표와 역할을 결정, 실행

- 1 16 홍미영, 강창일 의원 면담

- 국회 내외 활동자: 김인성, 최봉태, 서강석, 고일국, 여운택, 천정순, 이윤재, 김보나

 

1 19 소위개최!

- 오전 10 행자위 회의실에서

- 심의법안: 정부입법, 의원입법, 진상규명개정안

 

소송 승소를 위한 서명모음 현황

- 현재: 광주유족회(홍원희 60, 박장수 100, 김혜옥 50 ) 210, 김천용 180, 시민연대 홈페이지 30 , 기타 50여명 460여명.

 

재판장에게 보내는 요청서 1

- 미쯔비시 소송 관련

 

존경하는 제6민사부 이승호 재판장님 귀하

1945 8 24일 오후 5 20분 경에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패망함으로서 전쟁터에 강제 동원된 대한민국 국민 7,500여명을 아오모리현에서 태워 대한민국 부산항에 귀향시키려던 우키시마(•‚“‡ŠÛ 4,570)함을 일본국 교토 마이스루항에서 폭발물을 장치하여 폭침시킴으로서 6,000여명을 사망, 실종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사건직후 배를 인양하지도 않았고 사망자가 524명이라고 허위 발표하였으며 1954년에서야 사고 배를 고철로 팔아먹기 위해 9년이나 방치한 배를 인양하였습니다.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종전이후인데도 불구하고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을 상해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은폐를 위해 아무런 조치없이 일본국에서 조작되어지고 왜곡된 역사에 분개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본국으로 무사히 귀환시켜야 할 대한민국 국민들을 자그마치 7,500명이나 태운 배가 침몰했음에도 제대로된 사건조사는 물론이고 배를 인양하지도 승선자 파악 및 사망자, 실종자, 부상자 명단조차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히 사건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회피할 목적이었음을 전 세계에 규탄하며,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제대로된 사건규명과 책임추궁을 하지 않는 우리 대한민국 정부 또한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한일 기본조약이 명기한 1945 8 15일 이후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대한민국국회통일외교 통상위원회 '문서번호 9700010-2002-17'에 따르면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1945 8 15일 이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일본측의 귀책사유가 입증될 경우 일본 정부의 보상 또는 배상책임을 충분히 물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사료 됩니다."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제사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미쯔비시 소송이 일제시대때 수없이 저질러진 일본의 만행을 바로 잡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일본기업들이나 정부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전범기업들이 사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정의로운 판결을 하여 주십시오.

우리 민족의 어두운 역사를 되돌릴 순 없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어두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잘못된 과거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미쯔비시 소송을 통해 일본 전범기업들이 조금이나마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2007 1 7일 우키시마마루사건배상추진위원회

위원장 한영용 배상

 

재판장에게 보내는 요청서 2(일부)

- 포스코 소송 관련

조미옥 재판장님,

저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 사무국장 김보나입니다. 작년 12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있었던 증인신문 때 포스코 측 변호인이 저에게 공문을 보낸 적이 있다고 한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희가 시민연대의 이름으로 포스코에 보낸 공문은 질의서, 요구서, 답변요청서 등이 10여 차례, 그리고 이외에 면담요청서가 몇 차례 있고, 또한 요구서 직접 전달과 이에 대한 답변요청도 했습니다. 이것은 작년 4월부터의 일입니다.

저희 시민연대에서 보낸 것에 대하여 포스코가 보낸 답변공문은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만약 직인도, 수신자와 발신자 이름도 전혀 없이 알맹이만 팩스로 보낸 것을 공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저희는 포스코로부터 똑 같은 내용의 공문을 두 번 받았습니다.

포스코와의 면담도 몇 차례 가졌는데, 면담에 임하는 포스코의 태도가 성실했는가는 의문입니다. 면담, 공문, 그리고 포스코 앞 집회를 통해서 피해자들이 포스코에 요구했던 g책임이행, 피해자를 위해 재단에 기금을 출연할 것h에 대해 포스코는 g우리는 신입사원들에게 포스코가 조상의 피로 건립되었음을 교육하고 있다. 재단설립은 정부의 책임이고, 재단을 설립하면 기금을 출연할 것이다.h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g피해자의 요구안을 상부에 알리라. 주주총회에 피해자가 참석해서 발언할 수 있도록 하라. 재단설립하면 기금을 출연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정부에 알리라. 신일철이 강제동원 책임을 이행하도록 포스코가 나서라.h등을 요구하였지만, 몇 달 후 포스코가 이사진 중 1인에게 전달한 것이 전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 g정부가 재단을 설립하면 기금을 출연하겠다는 내용으로 약속공문을 보내 달라.h고 여러 차례 요구하였지만, 포스코는 이를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저희가 보낸 공문들에 대하여 답변공문을 거절하는 포스코 관계자에게 저는 g답변 곤란하다.f는 내용의 답변 거절 공문이라도 보내는 것이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냐.h고 말했지만, 포스코는 역시 이것도 거절하였습니다(지난 번 재판에서 e예의f라는 말을 포스코 측 변호인이 언급했던 이유는 저의 이 발언 때문으로 추측됨). 저는 g회사 직인도 없이 누가 누구에게 보낸다는 겉표지도 없는 것이 공문이냐? 피해자들을 진정시키려면 내 말 들어라.h고 하였습니다. 포스코는 g정식 법인체도 아닌데 공문 보낼 의무 없다.h고 하였고, 저는 g정부도 우리의 질의서에 답변 보낸다.h고 반박하였지만, 이 또한 무시당하였습니다.

피해자에게 돌아갈 청구권자금을 이용하여 건립되고 현재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그 자금이 피해자의 피의 대가임을 인정하고 있는 포스코가 피해자에게 취하는 이러한 태도는 극히 비상식적이고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받을 돈으로 포스코가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동안, 변변한 치료비 한 푼 없이 포스코의 성장을 지켜보며 징용의 후유증으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계십니다. 포스코가 권력을 축적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길거리에 앉아서 끼니를 때우며 데모에 나섰고, 일본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일본은 역시 이들에게 g한일협정으로 다 끝났다.h고 기각을 판결했습니다. 포스코는 이렇게 피해자들이 일본법정에서 기각을 받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피와 땀과 목숨과 눈물과 한숨과 혼령으로 이뤄진 포스코가, 피해자의 이 모든 서글픔의 근본이었던 일제 강제동원 전범기업에 대하여 다만 e어버이f로 모시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한국정부, 기업, 그리고 일본정부와 기업에게 외면당하는 피해자들은 마치 자신의 인권, 생존권, 재산권을 모두 박탈당한 채 정처 없이 떠도는 국제미아인 듯합니다. (중략)

저는 노구에 목소리도 떨리고 귀까지 어두워졌어도 일본 전쟁에 목숨을 빼앗긴 할아버지의 한 때문에, 할아버지를 잃고 평생을 살아온 한 때문에 활동을 멈추지 않는 할머니 때문에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시민연대 사무국장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만큼, 아니 할머니보다 덜하더라도, 혹은 더 하더라도 평생을 진한 고통 속에 눈물로 얼룩진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의 기업이, 피해자의 목숨 값으로 생장한 포스코가, 피해자의 한 방울 눈물만큼이라도 옳은 일을 수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를 거부한다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의로운 힘으로 옳은 일을 수행하도록 재판장님이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2007 1 8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 대 사무국장 김보나 드림

 

알아봅시다 /// 경부고속도로 ///

- ()유족회 전상기 충북지부장

 

1. 공사기간: 1968 2 1 ~ 1970 6 30일 완공 (2 5개월), 1970 7 7일 개통

2. 구간: 서울 강남구 제3한강교 ~ 부산시 구서동까지 총 428km

3. 사용 청구권자금: 6.893.000(전체투자의  4.4%). 우리 화폐 1.891.5백만원(18915백만원). 물가변동 17 32.155.5백만원(32백십555백만원)

4. 전체 투자액의  4.4% 에 해당한다. 전체 투자액에 대한 비율은 작지만.

5.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꼭 필요한 자재 장비를 적기에 공급하여 단시간에 공사를 완공하게 함

6. 도입물품: 청재류 - 강판, 형동, 철근, 가드레일, 가드빔, 파이프, 가드케이블, 가드펜스, 건설장비와 유지보수장비 등 182, 아스팔트, 고무압판, 이음판 ¨ * 청구권자금이 없었으면 단기간의 완공 불가

¦김보나  은행¦농협

계좌번호¦ 601154-56-164565

조혜자 9~11, 여운택 12

회비내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7. 역할: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중추신경으로 포항제철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역할을 했다.

8. 총연장 길이: 428km 4.4% 18.8km는 우리 피해자 몫이다.

 

회비납부를 부탁드립니다!!!